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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서울, 또는 베를린의 겨울에 대한 생각Stoppeln 2023. 6. 18. 14:22
서울, 또는 베를린의 겨울에 대한 생각
- 김이강 "타이피스트"
그 애에게 편지를 쓰려고 마음먹은 날
머릿속에서 짧은 문장 몇 개를 정갈하게 배열하고 바닥을 닦았다
겨울에 그 애는 추울 것이고
보온병 같은 것에 차를 따라 마시기도 하겠지
머릿속에서 문장 몇 개가 얌전히 앉아 있던 날
눈보라 속에 미세 먼지가 섞여 오던 날
전기와 가스를 아끼기 시작하던 날
누군가 피 흘린 흔적이 눈길에 스며 있던 날
사람들이 모이던 날
여전히 휴전인 날
나무가 많은 날
벽보들이 나뭇잎처럼 많은 날
베를린에서 머무른 이래로 그 애는 단 한 번 서울로 왔지만
이제는 멀리서 서울의 날씨를 궁금해하는 날
베를린 하다가 베를렌느 하는날
외파음을 발음하는 날
차갑게 번져 가는 날
겨울에 그 애에게 편지를 쓰려고
바닥을 닦고
거리를 걷는 일을 하였다
너에게 보낸 편지를 쓰고, 마지막에 내 이름까지 쓰고,
해냈다 이거 보낼 수 있다 진짜 해냈어 긴 숨으로 빠르게 생각했어.
내 마음보다 너가 웃을 수 있는 게 더 먼저라는 문장을 쓸 때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래서 그렇게 적고 있으면서도 싫었어.
혼잣말로 남은 다른 편지들은 벽으로 남겠지. 가끔은 투명한 유리창 같기도 하고. 읽으면 내가 보이거든 그 곳의 내가 나에게 돌아 오기도 하고.
어제는 친구가 연말이 기다려진다고 말했어. 연말. 겨울. 12월. 내게 상정되지 않은 시간이고 장소이더라. 너가 편지를 받기까지, 편지를 받고 내게 반응을 하거나 하지 않기까지, 그래서 내가 너에게로 가거나 어쩌면 너가 나에게로 오거나. 그 밖은 내게 없는 미래이더라. 너 없이도 살아가야지.
무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읽었던 시야. 너에게 편지를 쓰려고 캠퍼스를 구석구석 뒤져가며 애호박과 양파를 썰어가며 자전거 폐달을 밟아가며 말들을 쓸어 담던 다시 흩뜨려 보내던 산책과 칼질과 바람까지 너에게 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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